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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 베트남 언론 나이 프로필 고향 매직 재계약

달소다 2022. 7. 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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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감독 베트남 언론 나이 프로필 고향 매직 재계약

박항서(64) 감독은 베트남 축구를 60년 만에 동남아시아 최강자로 올려놓으며 베트남의 국민 영웅으로 떠올라 현재까지 그의 인기는 이어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박항서 매직'이라 불리며 베트남 정부는 20208월 박항서 감독에게 2급 노동훈장을 수여했다고 하며 그의 실력뿐 아니라 인품을 갖춘 감독으로 친근함과 전문성을 겸비한 지도자로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베트남 선수들에게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지도하는 박항서 감독은 한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지도 철학을 위닝 멘털리티’(winning mentality)라고 표현하며 팀에 자신감과 신뢰 심어주려고 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과거 집사부일체에 출연한 박항서 감독은 "선수들이 '파파, 파파(아빠, 아빠)' 그러기도 한다. 다 내 아들이다. 그렇게 장난치면서 산다""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 하나가 우리다. 내가 아닌 우리가 우선이 돼야 한다"고 밝혔는데요.

 

이어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기, 신장 다 상관없다. 같은 조건에서 하는 것이다. 규칙은 지켜야 한다. 규칙만 지키면 아무 문제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박항서 감독은 방송을 통해 감독과 코치, 선수들 간의 규칙을 중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휴대폰 사용금지"개인 시간에야 당연히 쓰는데 식사 중에는 절대 못 쓰게 한다. 선수뿐만 아니라 코치, 감독인 나도 못 갖고 들어간다"고 밝혔는데요.

 

 

이어 "휴대폰이 없으니까 맨날 서로의 얼굴만 보고 있어야 하지 않나. 그럼 말을 하면서 친해지고 친목 도모에 효과적이다"라며 "난 식사할 때 관찰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아서 그들의 행동을 지켜본다. 얼굴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박항서 감독은 2017년 베트남 국가대표팀과 U-23 대표팀을 함께 맡으며 20181AFC(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 준우승을 시작으로 눈부신 성과를 냈습니다.

 

 

이어 2018아시안게임 4, 스즈키컵 우승, 2019년에는 동남아시안(SEA) 게임에서 60년 만에 남자 축구 금메달을 차지하게 되는데요. 이는 1959년 남베트남이 우승한 이후 60년 만이며, 1976년 통일 이후 처음이라고 합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준결승전에서 박항서 감독 옆에서 전략을 엿듣는 척하는 손흥민

이렇든 베트남에서 대단한 성과를 내며 2018년 베트남 국영 TV가 뽑은 올해 최고의 인물로 꼽히기도 했으며 2019년 베트남축구대표팀 응우옌 꽝하이베트남 선수들이 하나로 뭉쳐 경기할 수 있도록 박항서 감독님이 도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을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 올려놓으며 사상 처음으로 베트남 축구가 월드컵 최종예선에 진출하였으며 결과는 118패로 B조 최하위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41녀 중 막내인 박항서는 아버지는 일본 유학생 출신으로 경찰 간부로 재직하다 부상으로 국가유공자로 선정되셨으며 어머니는 명문 준주여고를 나오셔서 두 분이 고향에서 약방을 운영해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랐다고 합니다.

 

 

박항서 감독은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 출생, 195710164세이며 키 166cm, 학력은 생초초등학교 (졸업), 생초중학교 (졸업), 경신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체육학과 (학사), 1978년 제20회 아시아 청소년 축구대회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며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늦게 축구를 시작한 박항서는 선수 시절 미드필더였으며 고등학교에 입학 후 축구단에 들어가 6개월간 후보 선수로 지냈고 열심히 훈련하여 6개월 만에 주전으로 발탁, 1976년 고 3때는 전국 청룡기 축구대회에서 결승골을 넣어 경신고에 우승컵을 안겼다고 합니다.

 

이후 한양대에 입학, 2학년 때인 1978년 아시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청소년 대표팀 주장을 맡아 우승을 했습니다.

 

박항서는 1981년 실업 축구단이었던 제일은행 축구단에서 성인 축구 경력을 시작으로 같은 해에 입대해 육군 축구단 충의에서 활동, 1984년 럭키금성 황소(FC서울)에 창단 멤버로 입단, 1984422일 유공 코끼리와의 경기에서 프로 데뷔골을 기록했습니다.

 

 

이어 1985K리그 우승과 1986K리그 준우승, 1988 시즌이 끝난 뒤 은퇴, 4년의 프로선수 시절을 보냈으며(실업시절과 육군 축구단까지 합해 면 현역 시절은 7) 모두 99경기에 출전해 15골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1988년 은퇴한 직후 1996년까지 LG 치타스에서 LG의 트레이너와 코치로 지낸 후 1997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옮겨 20002월까지 활동, 1994FIFA 월드컵에는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로 활약, 200010월 허정무 감독이 사퇴한 뒤 200011월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발탁, 12월 한·일 정기전에는 임시 감독을 맡았습니다.

 

이후 히딩크호의 수석코치로 합류하여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까지 대표팀 수석코치로 활약해 감독과 선수들의 가교 역할을 하며 선수단의 융화를 일궈내는 등 2002FIFA 월드컵 4강을 이룩하는데 큰 공헌을 하게 됩니다.

 

월드컵이 끝난 뒤 20028월 대표팀 감독에 선임, 2002년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차지했으며 이후로도 코치, 기술 고문, 감독 등 2017년까지 축구지도자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 2017년 베트남 국가대표팀과 U-23 대표팀을 함께 맡게 되면서 베트남 축구의 새 역사를 쓰며 베트남의 영웅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박항서 감독의 아내 최상아 씨는 남편 박상서가 베트남협회로부터 제의를 받고 고민할 때 아내가 적극 권유했다고 하며 국가대표 감독이라니 부담감도 있었다. 그래도 부지런한 것만큼은 자신 있었다라며 베트남 행을 결심한 사연을 밝혔습니다.

 

박항서 감독은 두 팀을 4년간 이끌다 보니 힘들고 선택과 집중이 안 된다. 23세든 대표팀이든 한 군데만 집중할 수 있게 해달라라고 제시해 20225SEA게임 2회 연속 우승을 끝으로 23세 이하 대표팀 지휘봉을 공오균 감독에게 넘겼다고 하며 내년 초에는 재계약 협상을 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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